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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멸망한 뒤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아울러 발해를 세우고 발해의 제1대 왕이 된 대조영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대조영은 어떻게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를 세웠고, 어떤 내정과 외교 정책을 펼쳐 나갔을까요?
대조영의 출생과 성장
대조영은 669년에 고구려의 옛 수도인 평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걸중상이고, 어머니는 거란족 출신인 무루였습니다. 걸중상은 고구려가 멸망하기 전에 궁예 휘하의 부하로서 활약했던 인물이었습니다. 대조영은 어렸을 때부터 용맹하고 지혜로웠으며, 무예와 문예에 능했습니다. 그는 14세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당나라와 싸웠고, 여러 번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는 특히 689년에 당나라 장군인 이해고와 싸운 천문령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워 당나라로부터 인정을 받았습니다.
왕위 쟁탈과 발해 건국
대조영은 30대 초반에 당나라의 영주 도독부에서 고구려 유민들을 이끌고 동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당나라가 고구려 유민들을 강제로 영주 지방으로 이주시키고 가혹하게 대하는 것에 반발했습니다. 그는 중신들의 추대를 받아 698년에 동모산에 성을 쌓고 진국이라는 나라를 세웠습니다. 이것이 발해 건국이며, 대조영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동모산성을 개축하여 상경이라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상경은 발해의 첫 수도가 되었으며, 대조영은 여기서 24년간 통치하였습니다.
내정과 외교
대조영은 발해 건국 후에도 여러 가지 내정과 외교 정책을 펼쳐 나갔습니다. 그는 고구려의 유서를 계승하면서도 말갈족과 거란족 등 다양한 민족들을 포용하는 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불교를 국가 이념으로 장려하고, 문화와 예술을 발전시켰습니다. 외교적으로는 중국의 후唐과 친선관계를 맺고, 일본과도 교류를 하였습니다. 그는 후唐 황제인 명종과 친서를 주고받으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또한 일본의 국왕인 문무와도 사신을 주고받으며 상호 인정하는 관계를 맺었습니다.
사후와 평가
대조영은 719년에 별세하였습니다. 그는 왕실 헌장으로 후손들에게 훈요십조를 남겼습니다.
훈요십조는 발해의 정치와 사회, 문화, 윤리 등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대조영은 한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를 세우고, 다양한 민족들을 하나로 묶은 건국자이며, 그의 업적은 오늘날까지도 존경과 감사를 받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대조영의 삶과 업적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보았습니다.